연해주여행 (2010)

#8. 연해주와 고려인의 역사

snake4th 2013. 11. 9. 23:40


2010.7.1

 

 병원 견학을 다녀온 후 오후엔 간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려인 문화센터 내에 위치한 고려인 역사관으로 견학을 갔다.

 

 고려인이 이주한 19세기 중반부터 그들의 역사를 씨앗, 불꽃, 들꽃, 평화로 나누어 놓았다. 처음 연해주에 정착하는 시기를 씨앗, 항일투쟁이 중심이 되던 시기를 불꽃,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후 험난했던 시기를 들꽃, 이후 연해주에 재정착하게 된 지금의 시기를 평화로 나누어 놓았다.

 

 

 

 연해주로 넘어온 조선인들은 주로 탐관오리의 학정과 경제적 이유로 넘어왔다고 한다.

 

 

 

 설명하시는 간사님

 

 

 안중근 의사가 역사에 남은 사건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때문이지만 안증근 의사는 주로 연해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3.1 운동은 동북아 투쟁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일 것이다. 3.1운동은 연해주에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공산화 이후 연해주의 항일투쟁은 점차 계급투쟁의 성격을 띄게 된다. 소련 공산당 역시 일본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연합전선이 가능하였고, 실제로 고려인들은 극동 지역 혁명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게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인과 구분되지 않는다고 하여 한 이주정책이지만 이면에는 연해주 지방의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연해주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인구밀도로 고려인이 정착해 있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노동영웅 김만삼. 러시아 내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지만 소비에트 시기의 인물이었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적성국가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미주 한인들 역시 결국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민족일텐데 우리는 고려인들과 조선족의 역사를 배척한다.  

 

 

 그들은 소비에트 붕괴 이후 복권 되어 대규모로 연해주로의 재이주로 나선다. 귀소본능.

 

 

  

 동북아 평화연대 직원분들 이름인듯-

 

 고려인문화센터 로비. 우리가 간 곳은 1층의 고려인 역사관. 2층엔 강당이 있다.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있다.